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숱하게 엄친딸 엄친아와 비교 당해 왔던가.
서러운 마음에 한 번 외쳐본다.
엄빠, 나도 알고 보면 내 친구 엄빠가 부러울 때 많았다고요!
본격 ‘눈에는 눈, 비교에는 비교’로 맞서는 시간. 나도 저런 엄빠
갖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엄빠 사…사랑합니다.)
만화잡지 정기구독해주던, 내 친구 엄마

90년대 학창시절. 기다리던 만화책 신간이 나오는 날이면 만화방으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 사이에 몰래 끼고 읽느라,
집에선 내 방 이불 속에서 자는 척하고 몰래 펼쳐보느라 갖은 신공을 발휘하던 그 시절.
만화책은 교육과는 거리가 먼 유해서적이라고,
“절대 안 돼!”를 주장하던 엄마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렇게 몰래 보기 기술만 늘어가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가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유행하던 만화잡지
<윙크>, <이슈>가 쌓여 있고, <풀하우스>니 <레드문>, <비천무> 같은 만화책들을
친구와 그 친구의 엄마가 함께 돌려보고 있던 장면.
나는 진짜로 내 두 눈을 비볐다. 저것은 꿈이 아니던가!
내 친구의 엄마는 딸과 함께 보기 위해 만화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었고,
좋아하는 만화를 보며 사이 좋게 토론(?)을 나누던 사이였던 것.
과연 만화는 우리 엄마의 걱정대로 교육에 유해했을까?
그렇게 만화책을 열심히 독파하던 엄마 슬하에서 함께 만화책이든,
엄마가 읽던 소설책이든, TV드라마든 닥치는대로 보고 읽던 내 친구는
그대로 잘 자라 명문대의 국문학과 학생이 되었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
“엄마 이전에 나한테는 아내야!”
내 친구의 사랑꾼 아빠

어렸을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참으로 열정적으로 싸우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다 사랑이 많아서’ 하고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그때는 엄빠가 언제 또
싸우실까, 자식으로서 살얼음판이었던 기억이 많다.
아빠는 사업 때문에 항상 바쁘고 집안에 무심했던, 그야말로 시대가 용인해준
딱 옛날 아빠. 그 전형적인 남성상이었으니까.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아빠 이야기를 듣고 진정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우리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우리 오빠랑 나보다 엄마가 항상 1순위라니까”
하며 볼멘소리 하듯 한 말이었다. 내 친구 아빠는 자타칭 연애 때부터
다 큰 대학생 아들과 고딩 딸이 있는 지금까지, 엄마에게 한결같이
‘너무(!)’ 다정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식들 앞에서 누누이 “너희들한텐
엄마지만, 나한테는 엄마 이전에 아내다. 엄마가 넘버원”이라고 세뇌시킨다고.
사사건건 엄마와 의견다툼이 잦던 우리 아빠가 비교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그래도 자식들 때문에 살지…” 하며 나를 향해 웃음 짓던
아빠를 보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식들 때문에 억지로 사는 아빠 말고, 서로가 서로에게 1순위인 부모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 같으면 나 말고 엄마가 1순위 되게 해달라고
소원이라도 빌고 싶을 텐데,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시금 내 친구의
사랑꾼 아빠를 떠올려 본다.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가 넘버원인 할아버지이길 바라며.
‘가족 운동일’을 만들었던, 내 친구 부모님

옆집에 살던 내 친구 가족의 일요일은 늘 새벽같이 시작됐다.
일요일마다 친구네 4인 가족은 근처 수영장에 아침 자유수영을 다녔다.
다같이 10분 정도 걸어가 한 시간 자유수영을 마치고, 다시 5분쯤 걸어
유명 설렁탕집에서 다같이 설렁탕을 먹고 돌아오는 하루.
옆집 가족이 그렇게 운동일과를 마치고 상쾌하게 집으로 귀가하던 시각,
우리 집에서는 엄마의 호통이 울릴 차례다.
“아우 좀 일어나! 해가 중천에 떴다고!! 쫌!!”
일요일이면 거의 침대와 한몸인 아빠를 깨우는 소리. 그에 질 새라
침대붙박이인 언니까지. 첫 끼로 점심을 먹는 데까지는 족히 두 시간여의
실랑이가 필요했던 우리집 풍경이다. 태어나길 아침형 인간이던 나는
일요일 옆집 친구네의 ‘운동데이’가 내심 부러웠다.
잠만 자는 아빠를 보지 않아도, 엄마의 알람 목청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옆집 4인 가족의 자발적으로다가 상쾌했던 그 일요일을.
이 글은 다만 눈에는 눈, 비교에는 비교로 갚겠다는 성토대회는 아니다.
엄친딸아들과 곧잘 비교 당해온 이 시대의 자식들, 그런 자식들이
한 번쯤은 중얼거렸을 소리 없는 아우성.
‘그만 비교해! 나도 ‘저 엄빠가 내 엄빠였으면…’ 한 적 많았다고!’를 글로써 대신 해봤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거다. 죽어라 비교해 봤자, 남의 집은 남의 집,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이요, 나는 나 너는 너다.
비교는 누구도 나를 다른 사람처럼 살게 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 이제 더는 서로 비교하며 고통스럽지 말자고. 이만 하면 잘 자라고 잘
나이 들었다고. 서로 다른 가족 부러워 하는 사이 실은 각자 성장해왔음을 믿자고.
엄빠, 우리 서로 지금 그대로 사랑합시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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